
원장 교육이야기
[토론회 & 간담회/04월 02일] KEDI 원장·연구진 `2014 교육기관 방문 및 현장 간담회` - 서울 신상중학교
- 출처 :
- 등록일 : 2014.04.22
- 게시자 : 관리자
- 원본 URL : https://www.kedi.re.kr/khome/main/journal/listEDJournalForm.do
현장중심 교육정책 지원을 위한 기관장 · 연구진 교육현장 방문 : 서울 신상중학교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 자유학기제 연구학교 운영)
자유학기제. 쉼표를 모르는 대한민국 교육현장에 조금은 생소했지만, 그래서 더 필요한 정책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자유학기제 연구학교 운영이 벌써 2차 년도에 들어섰다. 실제 경험한 학교와 관계자들은 우려보다 기대를 표명하고 있지만, 외부자 입장인 학부모들의 ‘학력저하’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정규수업시간 내에 진로활동들을 하는데다 교과목 지필시험 없이 토론 · 실습 ·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평가하는 방식이 아직은 낯선 까닭이다. 즉, 지금도 자유학기를 ‘노는 학기’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지난 해 서울시교육청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에 이어 올해는 교육부 자유학기제 연구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신상중학교(교장 안재홍) 역시 이런 ‘오해’들이 가장 큰 걸림돌인 것으로 지적됐다. 지난 4월 2일 서울 신상중학교를 찾은 백순근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을 비롯한 자유학기제지원센터 관계자 간담회에서 교원 및 담당 장학사들이 밝힌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와 자유학기제 연구학교 운영의 성과와 과제, 기대와 아쉬움을 정리해 봤다.
“전학 보내기 싫어요”…과도한 학력저하 우려
북부지원교육청 L 장학사 : 자녀를 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의 질문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학군 내에 어떤 학교들이 있는 지를 물었는데, 요즘은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학교가 어디죠?”라고 확인을 합니다. 왜냐고요? 아이들을 ‘놀리는’ 학교에는 보내지 않겠다는 겁니다!
L 장학사뿐만이 아니다. 안재홍 교장은 1988년 개교 당시 36학급이었던 학급 규모가 19학급으로 계속 줄고 있는 원인 가운데 학부모들의 자유학기제 기피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 했다. 자연감소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올해 1학년의 경우 작년보다 1학급이 줄어 든 데에는 학부모들의 ‘오해’가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다. L장학사가 언급한 전학 관련 문의들이 교장실로도 많았다는 안 교장은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유학기제 설명회를 하는 등 직접 찾아가는 적극적 홍보도 했지만, 자유학기제와 학력저하가 무관하다는 확실한 ‘증거’를 원하는 학부모를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안 교장은 증거는 없어도 ‘확신’은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진로탐색 집중학년제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변화를 직접 보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부터 스펙경쟁으로 지쳐 있지만, 장래 희망도 꿈도 없이 막연하게 공부만 하던 생기 없던 아이들의 밝아진 표정만으로도 스스로를 돌아볼 도약의 발판은 마련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발 앞서 정책을 실천하는 신상중학교로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이다.
정보 ? 지식 습득은 ‘학력’의 일부일 뿐
백순근 원장: 지필고사를 통한 수치화, 줄 세우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학력저하 논란이 있는 것이다. ‘학력’은 영어단어 몇 개, 수학 공식 몇 개 더 아느냐보다, 사고력을 키워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창의성의 대명사 아인슈타인의 명언도 있지 않나.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는 없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정보습득이 아닙니다. 사고하는 법을 훈련하는 것! 그것이 교육의 본질입니다.”
1학년 1학기 운영 힘들어…“매뉴얼 없나요?”
K 부장교사 : 기존과는 완전히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짜야 하잖아요. 특히 저희학교의 경우 1학년 1학기에 실시하다보니, 학생 수요 파악 등 기간도 너무 짧고 신학기 업무까지 겹쳐 더욱 힘들었어요.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수운영사례 등 다양한 매뉴얼을 보급했으면 좋겠어요.
자유학기제를 중학교 6학기 가운데 언제 운영할 지는 아직 연구단계다. 서울의 경우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를 실시하고 있어 신상중학교를 비롯한 교육부 연구학교 4개교는 1학년 1학기를 자유학기로 선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3월 전근발령이 나지 않을 교사들을 1학년에 배치한 뒤 여러 차례 연수, 세미나, 회의를 거쳐 준비했다는 고경옥 연구부장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1학년 1학기를 자유학기로 운영하는 것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 아래서 득보다 실이 많음은 짐작할 수 있다. 우선 학생들의 동아리 선택 등 요구조사를 충분히 할 시간이 도 없고, 초등학교에서 진로적성에 대한 준비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한 활동이 학생에게 얼마나 적절한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3월 전근이 결정되지 않은 교사들은 미리 교육과정 등 준비를 할 수 있지만, 2월 20일 경에나 발령받는 전근 교사들은 2주 남짓 시간 동안 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다. 이런 까닭에 교사들은 우수운영사례, 평가, 프로그램 등 매뉴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매뉴얼 의존, 업무 오히려 가중시킬 수도 백순근 원장: 1학년 1학기 운영은 현실적으로 초등 연계 등 문제점이 많다. 연구학교에서 이런 문제점의 도출과 함께 해법도 찾아 줘야 전면 시행에 참고할 수 있다. 매뉴얼을 원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매뉴얼 의존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우수운영 모델을 좇아가다 보면, 업무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키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 맞는 모델을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함께 찾아내야 한다.
사회의 적극적 협조? 아직은 희망사항!
Y 부장교사 : 아! 또 마감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교육기부' 사이트에 접속하지만, 좀 괜찮다 싶은 프로그램은 금방 마감돼요. 교육부나 교육청과 MOU를 맺었다는 기업이나 기관도 전화를 하면, 담당부서가 어딘 지 몰라요. 이리저리 돌리다 시간만 잡아먹고 끊어지는 경우가 허다하죠. 부처단위 홍보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Y 부장교사의 고민은 자유학기제를 운영하는 모든 학교의 고민이다. 중학교에서 진로교육이 강조되면서 매 학기 4시간(6시간 가중치 부여) 이상 직업체험을 하도록 하면서 체험처 발굴은 교사의 또 하나의 ‘능력’ 기준이 되어 버렸다. 교과목 수업도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업 체험활동을 위한 기관과 강연자로 나설 직업인을 교사가 일일이 섭외하기 어렵다는 것. 물론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교육지원청 · 기초지자체 · 지역사회 단체로 구성된 ‘자유학기?진로체험지원단’을 조직하고, 진로체험지원전산망 구축(전국 운영 7월 예정) 등 체계적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학교에서 직접 체험처에 전화 등 섭외를 하지 않고 교육지원청이 중심이 돼 관내뿐만 아니라 타 지역 체험시설까지 섭외해 학교가 원할 경우 연결하도록 시스템을 갖춰 나가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Y 교사의 이야기처럼 업무협약을 이미 맺은 기관들조차 협약은 협약일뿐 담당 부서나 인력 배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늬만 업무협약 되지 않도록 지원 노력백순근 원장: 사회는 우리들의 희망처럼 학교교육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학부모, 동문회), 가까운 지역사회부터 자유학기제를 응원할 수 있는 분위기와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한국교육개발원도 직업체험기관으로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챙기겠다.
학생도 교사도 ‘성장’하고 있다!
H 교사: 필요에 따라 수업 중간에도 평가를 하니까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훨씬 좋아졌어요. 반면 아이들이 느끼는 시험 스트레스는 줄어들었습니다. 교사인 저도 성장해 나가는 게 느껴져요. 수업이 곧 평가라는 것에 무게를 두니 아이들 하나 하나가 더 눈에 잘 들어와요. 어떤 지점에서 머뭇거림이 생기고, 왜 못할 수밖에 없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2학년 N양(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경험): 제 꿈은 막연히 의사였어요. 작년에 백병원에서 체험활동을 하면서 의사도 엄청나게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과, 소아과, 안과 등만 이 아니라 영상의학과 같은 것도 있고요. 아! 그리고 병원이라는 곳에 의사, 간호사만 있는 게 아니라 많은 다른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할 게 많아 졌어요.
신상중학교 교사들은 자유학기제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자유학기제의 개념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관련 서적을 읽고, 토론하고, 배움도 청하고, 진로 관련 정보들을 취합하면서 조금씩 신상중학교만의 자유학기제 밑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학기제를 준비하면서 신상중학교에서 중점을 둔 것은 진로연계 동아리 활동이었다. 기존의 동아리 활동이 학생들의 취미나 특기적성 위주로 구성되었다면, 학생들의 희망 진로에 따라 구성한 것이다. 이를 위해 설문 및 적성 검사를 수차례 거쳐 방송반, 관현악반, 방송댄스, 축구, 교지편집, 난타반, 클레이아트, 배드민턴, 동영상 제작반, 문화탐방, 과학실험탐구, 보드게임 등 21개의 동아리가 탄생했다. 하지만 동아리만으로는 학생들의 다양한 꿈을 모두 대응하고 지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 선택형 교과와 예술 프로그램도 병행해 운영할 계획이다.(표 참조)
서술형 평가와 수행평가 등 과정중심 평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고경옥 연구부장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는가’로 교사들의 생각의 초점이 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수업과 평가가 바뀌니 아이들을 보는 관점도 변했다는 것이다. 이는 학부모들이 바라는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증거는 보여줄 수 없어도 자유학기제에 대한 ‘확신’은 있다는 안 교장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지필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아이들은 마냥 놀지 않는다. 스스로 정한 과제와 규칙에 기대 이상의 책임감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먼저 말해줘요. 문제집 풀면서 공부한 건 시험치고 돌아서면 금방 까먹는데, 친구들하고 같이 만들고 찾고 토론하며 정리한 것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성과 재촉보다 ‘쉼’ 위한 본질 되새겨야
2년차에 들어선 자유학기제가 지금 되돌아봐야 할 것은 당장의 성과, 밖으로의 화려함에 치중하려는 조급함이다. 연구학교 성과를 과장하거나 협약기관 등 인프라 숫자만 과대 포장하거나 늘리려는 순간 본질은 훼손된다. 학생들에게 여유로움 속에서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애초에 자유학기제는 ‘쉼’을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2학년 J양: 음…….제가 처음에 적어 낸 꿈이 뭐였는지 아세요? ‘키가 컸으면 좋겠다’ 였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뭔지 잘 몰라서…. 지금은 춤을 추고 싶어요. 아직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은 찾았으니 노력해 보고 싶어요.